May 3, 2020

by thegmpc


좋은 열매

말씀(VERSE): 마가 11:12-14. 20-24


요즈음은 코로나19로 인해 식품점에 가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필요 한 물건이 있으면 식품점에 가게 됩니다.

가서 이것 저것 물건을 사다 보면 과일 코너를 지나게 되는데, 대부분 과일 코너는 보기에 좋게 잘 정리해 놓습니 다. 사과를 비롯해서 오렌지. 수박. 바나나. 포도 등등… 좋아하는 과일이 있으 면 사서 가지고 오게 되는데 맛이 있는 과일을 먹는 것은 참 좋습니다.

좋은 열매를 보면 그 열매의 나무 또한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지 예수님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꽃을 피우라 하지 않으시고 열매를 맺으라고 하셨습니다.

나무 뿐만 아니라 사람도 열매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 다. 그래서 예수님은 열매로 그들을 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 7:16-18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 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결국, 열매 즉 각자의 생활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좋은 옷으로 몸을 가리고 밤을 세워가며 곱고 아름다운 대사를 외워 말을 한다 고 해도 생활 속에서 맺어지는 열매가 거짓되고 더럽고 냄새 나는 것이라면 나쁜 나무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외식' 이라는 말로 표현하셨습 니다.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겉으로만 경건한 척 했습니다. 회당과 거리에서 나팔을 불며 구제했고,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했고, 주간에 두 번씩 금식을 하며 얼굴을 흉하게 하고, 슬픈 기색을 띄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외식하는 자들’이라 하 며 책망하셨습니다.

영국의 존 웨슬리(John Wesley)는 “참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언제 어디 서나 성실하고 정직하게 행동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소망합니다, 우리도 매일의 생활 속에서 좋은 나무가 되어 모두가 좋아하는 열매를 맺으면서 살기를…


April 26, 2020

by thegmpc


갈팡질팡하는 사람들

말씀(VERSE): 마가 10:46-52


기사에 보면 ‘미국 조지아주(州)가 시기상조 논란에도 불구, 4월24일 조기 경제 정상화를 강행한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연방정부 가이드라인 이외의 영업 재개에 대해 승인한 바 없다고 주장했다고 하면서 서로 책임을 상 대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갈팡질팡하는 이런 모습은 그 시작이 두려움 때문이라 생각이 됩니다.

두려움은 우리가 정상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도록 이성을 마비시킵니다. 평 상시라면 잘 하지 않을 실수를 하거나 비윤리적인 행동을 저지르게 만듭니다.

인생길을 가다 보면 적잖게 두려운 일들을 겪게 됩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결과에 대한 두려움, 보장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 건강과 질병에 대한 두려움, 인간관계 단절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등등… 그런데 이런 두려움은 모두 우리의 육신의 문제와 관계돼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열심히 애쓰고 힘쓰면 어느 정도는 극복하고 대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처럼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문제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의 노력으로는 극복할 수 없습니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다른 방안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영적인 문제, 즉 믿음의 문제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합니다.

삼상 16:14 절에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 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신이 떠나게 될때 우 리의 삶이 멈추게 되고, 그 마음은 두려움으로 가득 채워지게 됩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두려워 말라’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통계를 보면 365번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많이‘두려워 말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두려 움의 뿌리가 죄이고 죄는 우리에게 두려움을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세상적인 방법이 아니라 주님 안에 거할 때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매일의 생활 속에서 건강이나 관계, 세상 것에 시선을 두면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가치에 소망을 두고 나를 그 무엇 보다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의지한다면 지금 우리를 힘들게 하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누구가를 위해 섬기며 사랑할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 세상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 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April 19, 2020

by thegmpc


여유로운 마음이 행복의 지름길입니다.

말씀(VERSE): 시편 90:10-17


"3여(三餘)"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평생을 살면서 하루는 저녁이 여유로워야 하고, 일년은 겨울이 여유로워야 하며, 일생은 노년이 여유로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습니다. 너 나 없이 빨리 끝나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바라는 마음과 달리 들려오는 소식은 거리두기를 조금 더 연장해야 한다는 소식입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에게 실망과 조급함이 더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속에서는 조급한 마음 보다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말이 있고, “넘어진 김에 쉬어가라”는 말도 있습니다. 물론 상황이 상황인지라 쉬어도 쉴 수 없고 즐길 마음의 여유도 없겠지만, 그럴수록 여유를 갖도록 해야 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로 온 것은 하나님께서 잘못 인도해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도적인 인도 하심 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우리 안에 여유가 사라지고 조급함이 찾아오면 그 일이 무엇이든 실패할 가능성이 크고 웃음과 기쁨은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불평과 분노만이 남을 것입니다. 그러니 주어진 환경속에서 여유와 소망을 갖고 나아가야 합니다.

거북이가 장수하는 이유에 대해 읽어 본적이 있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 하나는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유를 가지고 산다는 것,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할 뿐 아니라, 이웃에 대해 배려의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에 감사가 채워질 것입니다.

삶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라 장거리인 마라톤과 같다는 것을 생각하고 좀더 여유를 갖고 사시면 좋겠습니다.

각자 행복의 기준은 달라도 여유로운 마음이 행복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April 12, 2020

by thegmpc


부활을 믿습니까?

말씀(VERSE): 벧후1:3-9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들 중 많은 이들이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을 믿는다고 합니다. 또 부활절을 국가 차원에서 명절로 정해 기념 하고, 국민의 대다수가 부활의 기적을 믿는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 게 합니다. 과연 우리는 부활의 기적을 얼마나 믿고 있는가? 또 그 믿음 안에서 능력 있는 생활을 하고 있는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부활의 기적을 확신하지 못하는 경우를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에 대한 확신이 없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성서신학자 윌리엄 바클레이(William Barclay)가 “부활이 없이는 교회의 존재 의미가 없다”라고 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부활에 대한 소망과 구원의 확신입니다. 부활의 확신이 우리에게 있다고 하면 우리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마음을 굳게 하여 흔들림이 없이 우리의 믿음을 든든히 세워 나갈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믿노라’하면서도 작은 일에 낙심하고, 믿음에 든든히 서지 못하는 것은 부활의 소망과 구원의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 주를 따르던 제자들도 주님의 부활을 경험하기 전에는 예수님의 예언에도 불구 하고, 그들의 믿음은 두려워 골방에 숨는 하찮은 것이었습니다. 수제자 베드로 는 스승인 예수님을 부인했고, 도마는 근심과 염려 우울한 모습으로 방황했으 며,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는 낙심과 절망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의 삶이 달라질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한가지였습니다. 그것은 부활의 주님 을 만났으며 눈으로 보고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제자들의 삶을 180도 바꿨습니다. 두려워 숨었던 저들이 세상 이 감당할 수 없는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들에게나 우리에게나 기쁨과 소망 그 자체입니다. 부활을 믿고 살아갈 때, 누구든지 죄와 죽음, 절망을 넘어 소망을 갖고 담대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신앙 뿐입니다.

[예수 부활하셨습니다. 할렐루야!]


April 5, 2020

by thegmpc


하루, 그 일상 속에서

말씀(VERSE): 눅19:35-38; 요19:30


요즈음 캐나다 사람 70% 가까이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하나 고민을 한다고 합니다. 이유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누구나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과의 만남이나 일터에서 일 할 수 있는 것이 어렵고, 좁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쉼을 갖기도 하지만 하루라는 시간이 너무 늦게 가므로 힘들어하는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루라는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한 시기입니다.

일상, 오늘이라는 이 하루가 왜, 중요할까? 우리네 삶이란 하루하루가 모아져 서 평생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톨스토이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 이순간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당신과 함께 있는 사람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당신 곁에 있 는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은 하는 것이다. 이 세가지가 우리가 세상에 있는 존재 이유이고 그래서 지금이 당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라고 하였습 니다. 모두가 어렵고 힘들어 하는 지금, 우리들이 가까이에 있는 이들을 새롭게 둘러 보며 따듯한 마음과 관심을 통해 행복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시 에 오늘이라는 이 하루 최선을 다해 내일을 준비하며 생활해야 할 것입니다. 누 구나 알고 있듯, 하나님의 시간은 쉬지 않고 지나 갈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순 간 우리들이 생각하는 어려움도 지나 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래와 연결해주 는 오늘을 징검다리삼아 좀더 나은 내일을 맞이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이라는 이 하루는 어제 죽은 사람이 그렇게 바라고 원하던 내일이고, 내가 살아갈 날 중에 값진 첫날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 코로나 19바이러스로 힘들어하는 이 날도 우리에게 값지게 사용하라고 주신 날입니다. 그러므로 매 순간 행복을 만들어 가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들의 삶을 원하시지 않을까요? 오늘, 무엇을 하며 누구를 위해 수고하며 하루를 보내야 하는지, 무엇이 더불어 기뻐할 수 있는지 자기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네 삶은 주사위 를 던져 정하는 운명 같은 삶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선택과 결단으로 이루어 진다는 것임을…

주변 상황이 힘들고 어렵지만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서 비관적인 생각보다 긍 정적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최선을 다해 즐겁게 하루하루를 보내면 좋겠습니다.


March 29, 2020

by thegmpc


두려움 보다 긍정과 배려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말씀(VERSE): 막 10:32-34


우리들은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 어디나 할 것 없이 아주 느리게 진행하거나 고요합니다. 그럼에도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더욱 속도를 내는 것 같아 염려가 됩니다. 정부는 어려운 이들을 돕고자 여러가지 대책을 내고 있습니다. 이런 때 좀더 관심을 갖고 서로를 돌아보며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이야 시대의 흐 름이 빨라져서 1-2년 만에도 없던 건물이 생기고 논이 변해 도시가 생기기도 하고, 바다가 육지가 되기도 합니다. 무심하게 다니다 보면 정말 새로운 건물, 빌딩 마을들이 생겨 새로운 곳에 온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멀리 계시는 분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가까이에 계시는 분들이면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은 연락도 하고 돌아보아야 하는데…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해 사람간 거리두기로 인해 더욱 멀어지고 무심해 할까 봐 염려가 있습니다.

무심하다는 것이 뭘까?

내 일 바쁘다고, 내 생각 복잡하다고, 내 가진 것 조금 손해 난다고 주변을 돌 아보지 않는 다면 우리는 무심한 사람이 되고 마는 것 같습니다. 늘 다니는 길 이어도, 늘 만나는 사람 이어도, 늘… 나 만을 생각하고 지낸다면 무심한 사람 인 것입니다.

종종 우리들은 내일 하면 되잖아, 아직 많이 남아있잖아 하며 그냥 쉽게 지나 치는 것, 그것이 무심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무심하게 보낼 때, 이웃이든, 가족이든, 친구든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무심한 사람’ 보다는 배려하는 마음으로 관심을 갖고 사는 것이 성도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빌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