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22일

by thegmpc


하나님과 우리의 기준은 다릅니다.

(김정훈 목사)

우리는 눈에 보이는 능력과 업적을 따라 사람을 평가합니다. 성공, 성취, 흠 없는 이력… 그런 것들이 선택의 기준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겉모습이 아니라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무너질 줄 아는 사람을 들어 쓰십니다.

유다의 인생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실수했고, 부끄러운 과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변했습니다. 다말 사건 이후 그는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그가 나보다 옳도다”(창 38:26)라고 고백합니다. 또한 베냐민을 대신하여 자신이 종이 되겠다고 나서는 장면(창 44장)에서 우리는 전혀 다른 유다를 보게 됩니다. 예전에는 동생을 팔아넘겼던 사람이, 이제는 동생을 위해 자신을 내어놓는 사람으로 바뀐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 유다를 통해 메시아의 길을 여셨습니다. 창세기 49장 10절의 약속은 훗날 다윗에게로, 그리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어집니다. 인간의 실패 위에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가 더 크게 드러난 것입니다.

요셉은 존경할 만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유다는 은혜가 무엇인지 보여 주는 사람입니다. 요셉이 인간적인 탁월함을 보여 준다면, 유다는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한 사람을 변화시키는지를 증언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요셉 같은 인생이 되지 못했다고 낙심할지 모릅니다. 내 삶에는 흠이 있고, 후회가 있고, 지우고 싶은 장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더 크게 보십니다. 우리의 실패보다 회개를, 우리의 연약함보다 변화된 중심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래서 오늘도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왜 요셉이 아니라 유다일까요? 그 대답은 이것입니다.

구속의 역사는 인간의 자랑 위에 세워지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 위에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2026년 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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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있어 선택의 기준은?

(김희수 목사)

우리들은 삶을 살아가면서 매 순간 선택을 하면서 삽니다. 그리고 그선택이 삶이 됩니다. ‘나는 ... 제품을 사지 않는다’ ‘나는 ... 음식을 먹지 않는다’ ‘나는 ... 하지 않는다’ 이런 것을 보면 작은 것들이지만 선택에 대한 것이고, 동시에 보이지 않는 습관이며 각자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 (Aabye Kierkegaard;1813-1855) 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냐 저것이냐’ 하는 선택의 문제다”라고 말했습니다. 인생에 있어 선택은 과거 현재 미래와 영원을 관통하는 것이기에 매일 매 순간 선택을 바로 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그 선택에 우리들의 인생이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선택을 잘 하면 유익이 있고 혜택도 있고 기쁨이나 행복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택을 잘못하면 그로 인해서 고생하고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선택을 할 때 옳은 선택, 즉 바른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바르고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르게 선택할 수 있는 기준이 되는 것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저울이나 길이를 재는 자와 같은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나 자신이 그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연약함과 치우침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 기준을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그래야 바른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매 순간 선택할 때 무엇을 기준 삼아 선택하십니까? 당신 자신? 아니면 예수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입니까?


2026년 2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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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게 산 다는 것

(김희수 목사)

다르게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모두가 두 다리로 걸어 다니는데 나 홀로 물구나무서서 사는 것일까? 많은 사람이 사는 도시나 마을을 떠나 광야나 산속에서 홀로 사는 것일까? 아니면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처럼 모두가 흐르는 강물을 따라 흘러가는 데 혼자서 역류하는 것일까? 1이런 것도 다르게 사는 것이라고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위와 같은 것은 신앙안에서 다르게 사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다르게 사는 것일까요?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누가 네 오른쪽 뺨을 때리거든 다른 뺨도 돌려 대라. 만일 누가 너희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고 하거든 겉옷까지 내어 주어라. 만일 누가 너를 강제로 약 1.5킬로미터를 가게 하거든 그와 함께 약 3킬로미터를 가 주어라. 네게 달라고 하는 사람에게 주어라. 네게 꾸러 온 사람을 거절하지 마라. 원수까지도 사랑하여라,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여라.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을 수 있겠느냐? 심지어 세리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여기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생각해 보면 다르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고 확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르게 산다는 것, 이것은 나를 나타내는데 목적을 두고 사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예수님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오늘도 내 삶의 자리에서 세상과 조금 다르게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주님과 함께 살고 있다면…


2026년 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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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가루 집안을 사용하시는 하나님

(김정훈 목사)

기독교인들에게 흥미로운 성경 이야기 가운데 하나는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권한을 사고팔았던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흔히 그 팥죽과 속임수에 시선을 두지만, 이 사건에는 아버지 이삭과 어머니 리브 가, 그리고 두 형제가 얽힌 복잡한 선택과 책임이 함께 등장합니다.

관습에 따르면 아버지는 큰아들을 축복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큰아들 에서가 아니라 둘째 야곱을 통해 아브라함과 이삭의 언약 을 이어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네 사람은 각기 다른 모습으 로 행동합니다. 이삭은 사냥해 온 고기를 좋아해 에서를 편애했고, 에서 는 장자의 권리를 하찮게 여겨 붉은 죽 한 그릇에 넘겨버립니다. 리브가 는 하나님의 약속을 알고 있었지만, 그 약속을 기다리기보다 인간적인 꾀로 앞당기려 했고, 야곱은 그 계획에 동참합니다.

이 가정은 믿음의 모범이라기보다 편애와 조급함, 욕심과 속임수가 얽힌 말 그대로 ‘콩가루 집안’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이 가정을 버리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 연약한 현실 속에서 구원의 역사를 계속 이루어 가셨습니다. 인간의 결정은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무너뜨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의 죄와 잘못된 선택이 가볍게 여겨지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연약함을 사용하시되, 결코 죄를 기뻐하시지는 않으십 니다. 우리가 조급함 속에서 선택하려 할 때, 결과를 통제하려는 유혹 앞 에 설 때, 야곱의 가정을 떠올려 봅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방법을 신뢰하며, 기다림의 믿음으로 살아가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 니다.


2026년 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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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이 즐거우면...

(김희수 목사)

젊은이들에게 동요 가사처럼‘새 나라의 어린이는 일찍자고 일찍 일어난다고’말하면 그것은 어린이 노래 가사 일 뿐이라며 웃고 넘깁니다. 젊은이들은 저녁 늦게나 새벽에 잠을 자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쩌다 내일은 중요한 일이 있으니 새벽에 일어나야 한다고 말하면 말은 ‘네’ 하지만 아침에 스스로 일어나는 것을 본적이 있나 생각이 듭니다.

사실 순종(Obedience)하면 많은 이들이 부담스러워 하고, 인기 없는 말이 되었습니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순종의 좋은 면이나 축복보다는 부정적이거나 또는 사람들의 마음이 거칠어져서 순종하는 것을 싫어하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순종이라는 말을 들으면 잘 훈련된 개를 떠올리기도 하고, 뭔가 좀 부족한 것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학생들은 선생님 말씀을 너무 잘 듣고 순종하는 모범생 보다는 오히려 반항적인 학생을 멋지다고 생각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순종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순종을 뜻하는 헬라어 (휘파쿠오)는“아래에서 듣다”라는 뜻입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귀로만 듣는 Hearing 만을 의미하지 않고 온 마음으로 듣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사람, 성품이 성숙한 사람, 복을 누리는 사람들은 순종을 잘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영국의 청교도 작가 존 번연(John Bunyan)은 “100% 순종은 100% 행복을 주고, 10% 순종은 10% 행복을 가져다 준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1% 순종을 하고, 어떤 사람은 100% 순종을 합니다. 100% 순종을 하면 하나님께서 100% 행복을 주시지만, 10% 순종을 하면 10%의 행복만 주십니다.

결과를 알지 못하고 따르는 것이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 힘들고 어렵지만 순종하는 생황은 자신에게 유익하고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이요, 축복의 길입니다. 그래서 삼상15장에서는 마음의 순종이 보이는 예배 행위보다 낫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날마다 말씀 앞에 순종하므로 삶 속에 기쁨과 복이 따르는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2026년 1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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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는 포기하는 것입니다.

(김희수 목사)

이곳에 와서 살면서 느끼는 것은 겨울이 무척 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겨울을 지낼 때 하는 것이 없으면 지루하고 재미없고 눈 오는 겨울이 싫어 집니다. 그러나 겨울을 즐기고 누릴 수 있으면 겨울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스키나 스케이트, 또는 겨울 낚시등등 이처럼 겨울에 할 것도 있고 눈도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한 때, 저도 겨울과 친해지기 위해 타보지 않았던 스키를 배우려고 블루마운틴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스키를 타다가 넘어지면서 손가락을 접질려 다치는 바람에 스키는 나와 맞지 않는다, 소질이 없나 보다 하며 그만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스키를 타지도 않았고 기초 지식도 다 잊고 말았습니다. 만약 그때 손가락을 접질렸지만 포기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잘 타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사람은 결코 실패에 이르지 않는다. 다만 포기할뿐이다’ 맞는 말입니다. 우리들이 뭔가를 실패할 때 보면 잘 못하거나 어려워서 실패하기 보다 대부분은 포기하므로 실패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대에 귀하고 중요한 일이나 큰 발자국을 남긴 이들은 분명한 목적도 있었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인도로 가는 바닷길을 연 콜럼버스, 새처럼 하늘을 날고자 하여 비행기를 만든 라이트 형제, 셀 수 없는 실패에도 포기하지 않으므로 전구를 발명한 에디슨까지, 그들이 실패하지 않은 것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를 불확실한 시대라고 말들 합니다. 짙은 안개가 끼어 있는 도로처럼 앞을 볼 수 없는 어려운 상황처럼 우리들의 매일의 삶도 그럴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질문을 하며 힘들어 할 때도 있습니다. 나는 과연 내년에도 이 일을 하고 있을까? 나는 과연 내년에도 건강하게 살고 있을까? 나는 ... ,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중요할 까요? 염려일까요, 어떤 일에 대해 포기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포기 하지 않고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무겁고 힘든 발이지만 들어 올려 한걸음 내 딛는 것입니다. 거기에 꿈과 희망이 그리고 후회 없는 승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실패는 포기하는 것입니다.


2026년 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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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기부자들

 (김정훈 목사)

해마다 한국에서는 연말에 아무도 모르게 선행을 베푸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그 중 전주의 ‘얼굴 없는 천사’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2000년부터 매년 연말이면 전주시 노송동 주민센터 인근에 거액의 현금 뭉치와 저금통이 든 종이 상자가 놓입니다.  2025년 말에도 어김없이 수천만 원을 기부하며 26년 연속 선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누적 기부액은 10억 원을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소외된 이웃을 위해 써달라”는 짧은 메모만 남긴 채 그 기부자가 누군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사람의 칭찬이 아닌 하나님의 관심을 기대하고 선행을 행하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군중들 앞에서 많은 가르침을 주시다가 유대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가지 경건 생활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구제할 때는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시고, 기도할 때는 사람들 앞에서 하지 말고 골방에서 하라고 하시고, 금식을 할 때에는 단정하게 하여 금식하는 사람인 것이 티 나지 않게 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심리를 너무나 잘 아십니다.  아니 저의 심리를 꿰뚫고 계십니다.  우리는 더 착한 사람인 것처럼, 더 영적인 사람인 것처럼, 더 신앙 생활을 잘 하는 사람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 애쓰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행동들의 상급은 이미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건 생활에 따르는 상급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사는 동안 이 땅에서 받아서 썩어 없어지는 것으로 할지 아니면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서 갚으시는 상이 될지는 우리의 동기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현 시대의 구조상 구제나 기부를 할 때 익명으로 하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동기가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겸손한 마음으로 돕기를 원한다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기도 생활이나 나를 쳐서 복종하는 금식 같은 영성 훈련을 할 때도 우리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는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고 나아가면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숨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


2026년 1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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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살아보자

(김희수 목사)

옛날 이야기에, 짚신 장사를 하는 큰 아들과 우산 장사를 하는 둘째 아들을 둔 한 어머니가 비가 오면 큰 아들 짚신 못 팔아 걱정, 날이 맑고 해가뜨면 둘째 아들 우산 못 팔아 걱정으로 언제나 걱정만 하니까 어떤 이가반대로 생각 해 보라고 일러줬답니다. 비가 오면 둘째 아들 우산 팔아 좋고, 날이 맑으면 큰 아들 짚신 팔아 좋고 하니 항상 기쁘게 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이 어머니가 생각을 바꿨더니 걱정은 사라지고 즐거움이 찾아왔다는 이야기입니다.

파스칼이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라고 표현한 것처럼, 사람은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행복이, 우울하고 불행 하다고 생각하면 불행이 찾아오게 됩니다.

우리들의 삶 속에는 어려운 일들이 늘 있습니다. 어떤 때는 벽 앞에 서있는 것 같은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위의 두 아들의 어머니처럼 한번 생각을 바꿔 보면 어떨까요? 부정적인 마음과 생각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꾸면 항상 기쁨이 옆에 있을 것입니다.

흔히 보통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의 다른 생각을 갖고 산다고 합니다. 플러스 사고방식과 마이너스 사고방식입니다. 플러스 사고방식을 가진사람 들은 어떤 어려운 여건에서도 자신이 가진 것을 보고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있는 것에 감사하며 기쁘고 즐겁게 살아갑니다. 그리고‘할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기 때문에 자신감이 있습니다. 그러나 마이너스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만 보고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없는 것을 보기 때문에 자신감이 없습니다. 그 원인을 남의 탓으로 돌리기 때문에 불평이 많고, 매사에 비판하기 좋아하고 시비조가 됩니다. 그러다 보니 좌절과 낙심을 하게 됩니다.

날 마다 승리하기를 원한다면 마이너스 사고를 플러스 사고로,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성경은 부정보다 긍정을, 원망 불평보다 감사를, 불신 보다 믿음을 갖고 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026년 한걸음 한 걸음 내 디딜 때마다 주를 믿는 믿음 안에서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살아봅시다.


December 2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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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첫 자리에 누구를 모실 것인가?

(김정훈 목사)

저는 어릴 때부터 한 가지 하고 싶은 일이 있었습니다. 새해가 되는 순간, 보신각 종소리가 울리는 종각에서 사람들과 함께 새해를 맞이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보던 그 장면이 늘 마음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습니다. 해마다 그 시간, 저는 송구영신 예배 자리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아쉬움이나 후회가 남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제 마음에는 분명한 고백이 생겼습니다. 그 시간에 제가 있어야 할 곳은 예배당이었고, 제가 함께해야 할 분은 주님이셨다는 사실입니다. 새해의 첫 시간을 예배로 시작할 수 있었다는 것이 지금은 감사로 남아 있습니다.

성경은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많이 드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남은 것을 드리지 말고, 먼저 드리라는 말입니다. 액수의 문제가 아니라 순서의 문제이고,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방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여유보다 우리의 우선순위를 보십니다.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했던 청교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급했지만, 그들은 예배의 자리를 먼저 세웠습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뒤로 미루지 않았습니다. 그 선택이 그들의 신앙이었습니다.

오늘 이민교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바쁘고, 정신없고, 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면 예배는 가능한 시간에, 신앙은 여유가 있을 때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미뤄진 신앙은 어느 순간 삶의 중심에서 멀어지기 쉽습니다.

송구영신의 이 시간은 우리에게 한 가지를 묻습니다. 새해의 첫 자리에 무엇을 두겠느냐는 질문입니다. 첫 시간을 예배로 드리고, 첫 마음을 주님께 향하며, 첫 결정을 기도로 시작하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첫 열매입니다.

새해를 맞이하며 거창한 계획보다 이 고백 하나면 충분합니다.

“주님, 새해의 첫 자리는 주님께 드립니다.”


December 2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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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사람들

(김희수 목사)

심리학자 윌리암 말스톤(Dr. William Marston)은 사람들이 사는 목적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우리들이 예상하는 것과 많이 달랐습니다. 사람들이 사는 목적의 94%가 기다리는데 있었다고 합니다. 그 많은 시간과 생각을 전부 기다리는 일에 쓰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12월이 되면 성탄절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기다리는 이유도 다양합니다. 어린이들은 일찍부터 성탄절을 기다리는데, 그들은 산타클로스를 통해서 자기들이 가지고 싶은 것을 얻고 싶어서 기다립니다. 젊은연인들은 성탄휴가 때 사랑하는 이와 함께 여행을 가고 즐기기 위해서 기다립니다. 성탄장식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성탄절을 기다리는 가족들도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노인들은 흩어진 아들, 딸들이 성탄절 휴가기간에 찾아와서 함께 지내기 때문에 기다립니다. 백화점과 쇼핑몰들도 성탄절 장식을 아름답게 하고 사람들을 기다립니다. 물건을 팔아 많은 수입을 올리려고 기다립니다. 이런 기다림은 성경이 약속한 기다림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기다림은 자기 욕심을 위한 기다림 이거나, 자기 즐거움을 위한 기다림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성탄절, 우리들이 기다려야 할 성탄절은 어떤 것일까요?

마태복음1:21절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은 온갖 죄악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기 위해서 오셨으며,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은 우리의 더러운 죄악이 씻어지고, 참된 구원과 평안이 임하며, 하나님의 참 사랑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주는 날입니다. 그래서 기쁘고 기쁜 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성탄절은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구원을 감사하며 경건하게 주를 찬양하며 기다리는 날이 되길 소망합니다.


December 1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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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면 피어나는 기쁨

(김정훈 목사)

강단에 있는 대강절 초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가운데 흰색을 제외하고 네 개의 초중에 세개는 보라색 그리고 한개는 분홍색입니다. 왜 분홍 색일까요? 바로 세번째 대강절 주일은 기쁨의 주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기쁨을 가장 아름답게 보여주는 장면이 바로 누가복음 1장, 마리아와 엘리 사벳의 만남입니다. 가브리엘 천사로 부터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예 수라 하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게 됩니다. 얼마나 두렵고 떨리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아이를 갖게된 엘리사벳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사람은 각자의 삶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길을 걷고 있었지만, 서로를 만나는 순간 기쁨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습니다. 성경은 그때 태중에 있던 세례 요한이“기쁨으로 뛰놀았다”고 말합니다. 기쁨은 억지로 만들어낸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가 가까이 오셨음을 알아차릴 때 솟아나는 반응이라는 뜻입니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의 집에 들어섰을 때, 상황이 바뀐 것은 아니었습니다. 불 확실한 미래도 여전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지금 일하고 계신다는 확신이 가득했습니다. 그 확신이 두 사람의 영혼을 밝히며 기쁨을 일 으켰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벳은 성령께 감동되어 이렇게 말합니다.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아이(세례 요한)가 나로 말미암아 기뻐 뛰노는도다.”이 장면은 우리의 기쁨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를 다시 가르쳐 줍니다. 기쁨은 상황의 변화보다 하나님이 가까이 계심을 깨닫는 것에서 시작 됩니다. 그래서 기쁨은 소리 내어 웃는 것만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부드 럽게 피어오르는 평안과도 같습니다.

대강절을 지내며 우리도 묵묵히 질문하게 됩니다. “나는 지금 누구와 함께 주님의 임재를 바라보고 있는가?” 마리아와 엘리사벳처럼 서로의 믿음을 깨워주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함께 바라볼 때, 우리의 마음에도 잔잔한 기쁨이 다시 살아납니다.

대강절 세 번째 주일, 성탄을 향한 우리의 걸음 속에서 하나님이 가까이 오셨 다는 기쁨이 은은하게 스며들기를 소망합니다.


December 7, 2025

by thegmpc


소개합니다

(김희수 목사)

생활을 하다 보면 다른 이들에게 이것 저것 소개하거나 알려줄 때가 있습 니다. 가볼 만한 여행지는 어디가 있습니까? 읽을만한 좋은 책을 말해 주 십시오, 음식 잘하는 식당을 아십니까? 믿을만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소개 할 분 없나요? 교회는 어느 교회에 나가야 하는지 등등… 물론 경험이 있 고 확신이 있으면 소개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소개하기가 쉽지 않 습니다.

전에 사람을 소개 한적이 있습니다, 물론 소개하는 사람도 부탁하는 사람 도 잘 알았지만 사람을 소개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것이 아니기에 망설이 다 소개를 했습니다. 오래 동안 좋은 관계가 되길 바랐는데 그러지 못해 소 개한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져본 적이 있습니다. 그 후 사람을 소개하 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서로에게 꼭 필요한 이들을 소개할 수 있다면 그것은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 생각을 합 니다. 그래서, 소개는 아주 신중하게 해야 하고 잘 알고 해야 하지만 소개 하는 것을 잘 만 사용하면 서로에게 유익하고 좋은 일이 되고, 축복이 됩 니다.

그래서 좋은 교회에 대해 소개를 할까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좋은 교 회”란 집 근처에 있어서 언제나 쉽게 갈 수 있는 교회를 생각하기도 하고, 사람이 많은 큰 교회를 좋은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교회에 자녀들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은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좋은 교회란 집과 가까운 거리, 사람이 많은 것, 좋은 프로그램 등으로 정 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좋은 교회란 어떤 교회일까? 성경은 반석이신 예수님 위에 세워진 교회요 그 안에서 살면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변화가 있고 세상을 향해서는 섬김과 사랑의 희생이 있는 교회라고 말씀하고 있습 니다. 따라서 성도의 삶의 모습이 그 교회가 좋은 교회인지 아닌지를 판가 름하게 되는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나에게 이런 마음이 있습니다. 누가 좋은 교회를 소개해 달라고 물어올 때 우리 교회 성도 모두 주저 없이 110% 확신을 갖고 [내가 다니는 큰무 리교회]라고 대답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November 30, 2025

by thegmpc


사랑의 띠를 매야 완성입니다.

(김정훈 목사)

수많은 유행가 가사에 사랑이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노래를 만든 사람, 부르는 사람, 듣는 사람 모두가 사랑하는 남녀간의 설렘과 애틋함을 노래 합니다. 성경에서도 사랑이라는 단어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고, 예수 그리 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 존재들입 니다. 비록 우리가 사랑에 대하여 날마다 실감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엄청 난 사건이 이미 일어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1세기 기독교 신자들에게 편지를 하며 이렇게 당부합니다.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 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우리의 관계는 언제나 우호적일수 없습니다. 서러움을 받을 수도 있고, 무시를 당할 수도 있고, 차별을 당할 수도 있고, 괴롭힘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수 많은 관계의 문제가 생겼을때 우리 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모세의 율법에는"상처에는 상처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을지 라 남에게 상해를 입힌 그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 것이며" (레위기 24장 20절)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맞는 말 같을때가 얼마나 많습니 까? 하지만 신약 시대에 와서는 성도들의 태도는 변화를 요구받게 됩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를 경험하였고 또한 놀라운 사랑을 이 미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답게 우리를 대적하는 자들에게 사랑을 베 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로는 쉽지만 실제로는 너무나 고 난이도의 신 앙 스킬입니다.

가끔 허리띠를 하지 않고 나갔다가 바지가 흘러 내려 불편했던 적이 있습 니다. 또 옷을 잘 입고 그 위에 벨트로 마무리 하는 패션 센스가 있는 사람 들이 있습니다. 이처럼 사랑은 모든 것의 최종 단계가 되는 것입니다.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관계의 어려움이 있습니까? 사랑의 띠로 완성하시 는 성숙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November 23, 2025

by thegmpc


자신이 중심에 있으면…

(김희수 목사)

건강에 대해서는 늘 자신이 있던 분이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좋지 않은 병이 오래되었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는 말을 들었 습니다. 살아가면서 우리들은 많은 착각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포근한 날씨가 계속될 줄 알았는데 하루도 지나지 않아 눈이 내리는 것을 보기도 하고, 물건 을 살 때 가격이 싸고 좋은 줄 알았는데 나중에 사용해 보니 실망할 때도 있습 니다. 그런가하면 우리들은 믿음에 있어서도 착각을 하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자신의 믿음의 무게와 확신이 대단한 줄 알았는데 작은 일에도 흔들리는 갈대 와 미풍에도 날라가는 솜털보다 가볍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 헤비급 권투 선수였던 알리가 비행기를 탔다고 합니다. 비행기가 이륙 을 준비하자 기내 방송에서 시트벨트를 매라고 방송이 나왔습니다. 승객들은 모두 자리에 앉아 벨트를 매는데 알리는 어깨에 힘을 주고 무개를 잡고 앉아 있었다고 합니다. 승무원이 점검을 하며 지나가다가 "시트 벨트를 매 주십시 오!" 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알리는 퉁명스런 어조로 "슈퍼맨에게는 시트벨트 따위는 필요 없소." 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승무원이 "슈퍼맨은 시트벨트가 필요 없는 것이 아니라 비행기가 필요 없는 겁니다. 시트 벨트를 매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승무원의 말은, 당신은 슈퍼맨이 아니 니 착각하지 말라는 뜻일 것입니다.

사전에는 ‘착각’이란 단어는 사실과는 동떨어진 생각이나 개념이라고 말합 니다. 즉 객관성이 희박하고, 자신에게 치우친 주관성을 전제로 하는 판단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살면서 사람들과 관계에서 그리고 자기 자신과 의 신뢰에서 착각할 때가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잠언26장12절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 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성경은 사람 이 착각할 수 있는 존재임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판단과 생각 이 옳다고 여기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착각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 착각이 자신을 망치기도 하고, 어리석고 우둔 한 자로 만들기도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자기 중심의 생각속에서 착각하고 있지는 않는지 다시 곱씹어볼 일입니다.


November 1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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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높은 곳을 향하여

(김정훈 목사)


제가 어렸을때 '저 높은 곳을 향하여'라는 기독교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순교자이신 주기철 목사님의 삶을 영화한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자신의 안녕이나 세상의 가치를 추구하지 않고 신사 참배를 거부하고 맞서 싸우다 독립을 한 해 앞둔 47세 한 참때에 고문을 당하시고 형무소에서 순교를 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참 열심히 살아갑니다.  자신의 자리에서 맡은 일들을 성실하게 해 나갑니다.  우리 모두에게 그 성실함이 요구됩니다.  하지만 그 성실함은 반드시 하나님의 가치관과 부합되어야 합니다.  내가 좋아서, 내가 하고 싶어서, 나의 필요와 욕구를 위해서 하는 것은 온전하지 않은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피하고 경계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당시 성도들에게 간곡히 부탁을 합니다.  위의 것을 찾고, 위의 것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위의 것은 무엇입니까?  천국에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일상 가운데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들입니다. 
위의 것과 반대 되는 말은 '땅의 것'입니다.  땅의 것은 이 땅에 살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병들게 하고 우리를 타락하게 만들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불순종하게 하는 행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결코 기뻐하지 않으시는 행동들이고 우리를 망가뜨리며 우리의 거룩함을 말살시키는 것입니다. 땅의 것은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고 그것을 위하여 인생을 바치는 것들입니다. 
바울 사도는 골로새서 3장에서 땅의 것들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나열하고 있습니다.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6.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7.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8.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땅의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경험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세상의 법정에서는 처벌을 받지 않을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의 진노는 결코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얼마나 복 된 것인지 경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격을 닮아가는 것이 우리의 목표와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삶을 누리시기를 소망합니다.


November 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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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끼는 자 없이 떠난 인생

(김희수 목사)

신문 기사나 TV를 보면 좋은 이야기를 접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는 내용, 즉 많은 이들에게 상처와 아픔을 주는 내용을 접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좋지 않은 일들을 통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일상속에서 우리들의 말과 행동들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아픔과 상처를 주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유다 왕 중에 여호람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삶을 어떻게 살았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그의 삶의 끝을 보면 악하고 잘 못된 삶을 살았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가 죽었을 때에 성경은 이렇 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아끼는 자 없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 평생을 살고 떠난 인생을 논할 때 우리들은 여러 가지를 이야기합니 다. 허망한 인생, 공수래 공수거, 또는 구차한 인생, 슬픈 인생, 아름다운 모습이야, 그런데 어떤 이에게는 의인의 죽음이다, 하며 경의를 표하 기 도 합니다.

죽음은 이 땅에서 우리들이 걸어온 삶의 평가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들을 평가할 때 삶의 이력서를 보며 평가합니다. 사람 뿐일 까요? 하나님도 우리들의 삶의 이력서를 보며 평가합니다.

누구든지 길이의 차이는 있지만, 한번 주어진 삶을 살다가 갑니다. 그리 고 그의 삶의 이력서를 보며 평가할 것입니다. 여러 평가 중에 듣지 말아 야 할 말이 있다면‘아끼는 자 없이’란 말이 아닐까요?

쉬지 않고 흐르는 강물처럼 멈추지 않는 시간 속에서 인생 마지막 잘 마 무리하여 모두가 아쉬워하고, 그의 삶을 따르고자 하는 인생 이력서를 만들어 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여호람이 삼십 이세에 즉위하고 예루살렘에서 팔 년 동안 다스리다가 아끼는 자 없이 세상을 떠났으며 무리가 그를 다윗 성에 장사하였으나 열왕의 묘실에는 두지 아니하였 더라”(대하 21:20)


November 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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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을 이긴 할례

(김정훈 목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몇가지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정결한 음식, 즉 코셔를 먹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언제나 유대인들에게 가장 우선시되는 것들입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전기 등도 안식일이 시작되는 금요일 해 지는 시간전에 미리 켜둡니다. 안식일에는 회당에 가거나 가정에서 가족들과 미리 준비한 음식을 나누며 시간을 보냅니다. 전통적인 유대인들은 자동차도 타지 않고 걸어서 회당에 갑니다. 그래서 제가 사는 동네에 유대인들이 많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왜냐하면 회당 가까이 살면서 안식일에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안식일을 이긴 것이 있으니 바로 할례입니다. 유대인들은 아들이 태어나면 팔일째 되는 날 할례를 행합니다. 구약에 기록된 말씀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팔일째 되는 날이 안식일이면 어떻게 할까요? 하루 미루나요? 아니면 하루 앞 당갈까요? 정답은 할례를 행해야 하는 날이 안식일지라도 할례는 그 날에 행해야 합니다.  

모헬이라는 의학적, 율법적 교육을 받은 사람에 의해서 할례가 행해집니다. 이 할례에는 가족들과 회당 사람들이 참여합니다. 성대한 의식이 행해지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한 사람의 하나님 백성이 탄생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탄생한 이후에는 이 할례의 자리를 세례가 대신 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세례는 할례를 대신 한 것이 아니라 할례의 의미를 완성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유대인은 할례를 받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으로 여깁니다. 교회는 세례를 받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할례나 세례는 하나의 형식적인 의식입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나 자녀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따르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았다고 모든 것이 끝난것이 아닙니다. 그때부터 더욱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세례 교인으로 주님께 합당하게 여김을 받는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October 26, 2025

by thegmpc


찾아온 가을 속에서…

(김희수 목사)


뒤뜰에 작은 공간이 있어 봄에 들깨도 심고, 호박과 오이, 그리고 고구마 를 심었습니다. 그래서 들깨 잎도 먹고 호박이나 오이도 먹을 수 있었습니 다. 그런데 가을이 오며 아침 기온이 내려가자 그 파랗던 잎이 노란색으로 바뀌고 줄기에 달려 있던 호박이나 오이들이 더 이상 자라지 않고 떨어지 는 것을 보며 추수를 생각했습니다.
씨앗은 누가 뿌리든 어김없이 그 자리에 싹이 나고, 어디로 옮기든 불평을 하지 않으며, 사랑을 해주면 튼튼하게 잘 자라줍니다. 한 알의 작은 씨앗도 실망을 주지 않고 열매로 보답을 합니다.


성경 요한복음 15장15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성경은 하나님은 농 부이시며 예수님은 나무이며 우리는 열매를 맺는 가지라고 말씀하고 있습 니다. 농부의 마음을 이해한다면 하나님의 마음도 조금은 알 수 있지 않을 까요?
심겨진 씨앗들이 자라 풍성한 열매를 맺을 때 우리 마음에 기쁨이 넘치듯, 믿음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좋은 열매를 맺을 때 하나님께서도 기뻐하 실 것입니다.


결실의 계절 가을이 왔으니 가을을 살고 그 안에서 풍성함을 누리고 하나 님과 깊은 만남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더하여 아름답고 풍성한 가을속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걸어온 내 발자국이 어떤 모습인지, 시간의 흐름속에 자신의 삶의 열매는 어떤 것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계절에 비해 가을은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기도하기에 좋은 계절도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새롭게 생각하며 감사를 할 수 있는 계절이기도 합 니다. 그러기에 이 가을에 깊이 있는 기도를 통해서는 우리의 마음이 하나 님의 보좌에 닿기를 바라고, 삶을 통해서는 그 어느 계절 보다도 풍성한 열매와 감사가 넘치는 계절이 되길 소망합니다.


July 26, 2020

by thegmpc


[더 많이 웃어 봅시다]

말씀(VERSE): 마가 14:43-52


어린아이는 하루에 500번 이상 웃지만, 어른이 되면 하루에 15회 정도밖에 웃지 않는다고 합니다. 특히 민족에 따라 웃는 것이 많이 달라 지는데, 한국인 들은 더더욱 웃지 않는다고 합니다. 외국인들에게 비쳐진 한국인은 잘 웃지 않 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얼마나 웃지 않았으면‘웃으면 복이 와요’TV 프로 그램이 있었을까요?

요즈음은 웃을 일이 많지 않은 시기입니다. 우리들의 바램과는 달리 코로나19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어서 직업이나 일용할 양식, 건강에 대한 염려, 더군 다나 앞일에 대한 불안감과 사회적 거리두기 등으로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 습니다.

그럴지라도 웃는 일은 더욱 힘써야 합니다. 성경 잠언 15:13절에 보면 ”마음 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말씀했는데요 근심은 그 사람을 병들게 하지만 웃음은 삶을 풍성하게 하고 건강한 생활을 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웃음보다 더 좋은 보약은 없다’는 말처럼 웃으며 사는 사람은 건강을 보장 받은 사람입니다.

[미국 메릴랜드 대학의 예방 심장학 센터는 환자 300명을 연구한 결과 많이 웃는 사람들이 심장병 발병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습니다.

전에 병원안에서 오가는 이들의 얼굴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얼마나 힘들면 웃음이 사라지고 어두운 그림자가 저렇게 짖게 드리워졌을까?

고통과 죽음의 두려움 그리고 염려… 그런데 그 많은 얼굴들 중에 웃음을 잃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분들을 보면서 저분들의 웃음과 평안, 그리고 행복은 어디서 오는 걸까?

새롭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두운 얼굴들 중에 웃음을 보 여주는 이들은 사랑이란 마음을 갖고 자신도 힘들지만, 더 힘들고 어려운 이들을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기쁨이나 행복, 그것은 멀리 있는 것도 주변 환경의 영향에서 오는 것도 아닙 니다. 기쁨과 행복을 잃지 않는 이들을 보면 기쁨이나 행복은 그들 자신의 마음 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음속에 사랑과 섬김으로 가득 채울 때 얼굴에는 웃음이 나타나고 마음에는 행복이 자리를 잡을 것입니다. 생활속에서 많이 많 이 웃으므로 행복한 생활이 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