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e 21, 2020

by thegmpc


[위로하는 이가 있다면… ]

말씀(VERSE): 사 64:7-12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많은 이들이 힘들지만 인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가 힘들고 어려운 것은 자신이 힘들고 어려울 때, 아니 죽음이 찾아올 때 내 곁을 지켜 줄 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인생이라는 삶을 정 리할 때 곁에서 손잡아 주는 사람이 없다면 참으로 힘들 것입니다. 신문이나 방송등 기사를 보면 나이 많은 분들이 코로나로 생을 마감하고 떠나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 죽음이지만, 그 죽음을 맞이할 때, 주 위에 손잡아 주는 사람이 없다면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위로의 손이 나를 잡아 준다면 그가 누구든지 평안이 잠들것입니다.

천국의 소망이 확실한 성도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기에 곁을 지키는 이들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참으로 평안히 가셨습니다. 주변에 함께 하는 이 없었지만 주님께서 함께하 셨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분을 보며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겠다고한 약속 을 생각하며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외로운 자들의 친구이십니다. 주위에 친구가 되어줄 사람이 아 무도 없어 외로워하든지 아니면 사람은 많지만 그 많은 사람 속에서도 외로움을 타는 경우든지 상관없이 외로운 우리의 벗이 되시려고 우리를 찾아 오셨습니 다. 그래서 오늘도 내 안에 계시고, 내 곁에 계시고, 나와 함께 동행하십니다.

또 우리 예수님은 죄인들의 친구이십니다. 그래서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필 요 없고 오직 병든 자에게만 의원이 필요하다고 하시면서“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에서 버림받고 멸시 받는 죄인들을 위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낙심한 자들의 친구이십니다. 우리가 삶을 살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찾아옵니다.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이 죽기도 하고, 교통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사업에 실패하기도 합니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원하 지 않았던 일들이 생기곤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버림 받은 사람 같아 낙심하고 절망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럴 때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은 이와 같이 낙 심하고 절망한 사람들의 친구라는 것을…, 그리고 도움을 요청하면 그 분은 말 씀하십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 니라!”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위로자로 항상 내 곁에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니 그분의 손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June 14, 2020

by thegmpc


[그 물을 던질 때 마다…]

말씀(VERSE): 마가 13:1-8


지난주간 타운하우스 관리회사에서 집 뒤들에 있는 잡목들을 제거하고 목제 로 울타리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언덕지고 지저분한 공간이 남아 보기에도 좋지 않고 작은 공간이지만 밭을 만들어 사용하면 좋을 것 같아 계단 식 화단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더운 날씨에 땅을 파고 자투리 나무로 계단을 만들어야 해서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만들어 놓고 빈 땅에 호박. 상치. 꽃을 심어 놓으니 보기에 좋았습니다. 가족들의 작은 수고였지만 수고한 만큼 뭔가 만들어 졌다는 것이, 볼 때마다 기분을 즐겁게 합니다.

종종 항구에서 만선을 꿈꾸며 떠나는 선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끔은 그 꿈을 이루고 돌아오는 배들에 대한 기사를 보기도 합니다. 전에 신문 에서 그리 크지 않은 조기 잡이 배가 한번 그물을 던져 배에 가득 채울 만큼의 조기를 잡았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습니다. 그 기사를 보며‘참으로 기뻤겠다’ 생각을 했습니다.

한 번에 잡은 고기가 배에 가득한 것을 보면 입어 벌어져 다물어지지 않는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수고는 더 되겠지만 그물을 던질 때마다 그물에 많은 고기들이 잡혀 올라오는 기쁨은 더 오래 갈 것입니다.

로또 맞는 기쁨도 좋지만 저는 땀과 수고가 있는 곳에 만족할 만한 열매가 있고 그 열매로 인해 찾아오는 기쁨이 더욱 좋고 우리의 인생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은 흐르는 소리도 없지만, 금년도 벌써 절반이 지나고 있습니다. 누구나 계획을 세우고 시작을 했을 것입니다.

계획대로 되기도 하 겠지만, 그렇지 않는 것들이 더 많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럴지라도 땀과 수고 에는 열매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성경 시 편128: 2절에,“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 로다” 말씀했습니다.

수고에 대한 보상으로 열매들이 하나 둘 쌓이고 쌓여, 올 한해 삶의 광주리에 수고의 열매로 가득 채워지고 넘쳐나 자신 뿐만 아니라 이웃까지 기쁨이 넘치는 2020년이 되길 소망해 봅니다.


June 7, 2020

by thegmpc


[다른 모습이 되지 않도록]

말씀(VERSE): 마가 12:38-44


모든 것에는 겉과 속에 색깔이 있습니다. 같은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대부분 겉 색깔로 그것을 이해합니다. 맛있게 먹는 사과도 속 은 하얀색이지만 겉이 붉으면 빨간 사과라고 말합니다. 대부분 보이는 겉 모습 만을 가지고 이해하거나 판단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을 대할 때도 겉 모습 만 보고 판단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게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닌가 봅니다.

명심보감의 성심편에‘바다는 마르면 마침내 그 바닥을 볼 수 있지만, 사람은 죽어도 그 마음은 알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열길 물속은 알기 쉽지만 사람 마음은 알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생활을 하다 보면 싫든 좋든 많은 이들과의 관계속에서 살게 됩니다. 깔끔해 보이고 말이 정갈한 사람이 화가 나면 욕설을 하거나 분을 삭이지 못해 씩씩대 는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인간인가 싶을 정도로 완벽한 사람이 깨지기 쉬운 질 그릇 같은 모습을 볼 때면 겉과 속의 차이를 새롭게 느끼게 됩니다.

겉과 속이 일치하는 사람보다는 다른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겉 모습 을 먼저 봅니다.

속을 볼 수 있는 능력도 없거니와 겉에 대한 호감이 많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실체는 그 사람의 내면입니다. 성숙한 삶은 그 사람의 내면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겉으로만 경건한 척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회칠한 무덤" 이라고 호된 책망을 하셨습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신앙인이라면 모름지 기 겉모습 보다는 속 사람, 내면의 모습이 아름답고 주님의 모습으로 가득 채워 져 있어야 합니다.

하루하루 인생이라는 여정을 갈 때 다른 이들을 바라보며 실망하거나 판단하 기보다 나 자신을 말씀이라는 거울에 비쳐보며 겉과 속이 다르지 않도록 더욱 힘써 다듬고 다듬어 가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주님께 ‘참 잘했어요’라는 말씀을 듣길 소망합니다.


May 31, 2020

by thegmpc


[참 잘 했어요]

말씀(VERSE): 마가 12:28-32


‘참 잘했어요’ 생활 속에서 따뜻한 말 한마디가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릅니 다. 한 마디 말로 상대방을 편안하고 기분 좋게 하는 사람을 보면 참으로 부럽 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이든, 혹 지나가는 나그네의 말일지라도 듣는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면, 그보다 멋진 일이 없을 것입니다.

임기 중 경제공황을 뉴딜정책으로 해결했으며,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 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장애를 극복하고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입니다. 그가 처음 장애를 얻고 휠체어를 탔을 때는 젊은 나이인 39세 때였습니다.

[실망속에 방안에서만 지내는 것을 지켜보던 아내 엘레나는 비가 그치고 맑게 갠 어느 날 남편의 휠체어를 밀며 정원으로 나갔습니다. 아무 말없이 하늘만 쳐다보는 루스벨트에게 엘레나가 말했습니다. " 비가 온 뒤에는 반드시 이렇게 맑은 날이 옵니다. 당신도 마찬가지예요. 뜻하지 않은 병으로 다리는 불편해졌 지만 그렇다고 당신에게 달라진 건 하나도 없어요. 여보, 우리 조금만 더 힘을 냅시다."

이 말에 루스벨트는 "이렇게 장애가 있는데 그래도 나를 사랑하겠 소?" 그러자 엘레나는 웃으며 말했다고 합니다. "아니 무슨 그런 섭섭한 말을 해요? 내가 지금까지 당신의 두 다리만을 사랑한 것 같아요?" 엘레나의 이 재 치 있는 말에 루스벨트도 함께 웃었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참 잘했구나. 참 잘 하시네요. 힘 내세요. …’, 세상을 살아오면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따뜻하고, 다정한 말 한마디라고 생각합니다. 다정한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리고, 부주의한 말 한마 디가 싸움의 불씨가 되고, 한 마디 말이 깊은 상처와 일 평생 아픔을 주기도 합 니다.

그런가하면 부정적인 말을 많이 하면 인생이 불행해지고, 긍정적인 말을 많이 하면 인생이 즐거워진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니 한 마디 말일지라도 입 밖으 로 나오기 전에 생각하고 해야 합니다. 우리들이 어떤 말을 하는가에 따라 자신 은 물론 상대방에게 상처나 위로, 즐거움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잠18:21)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엡4:29)


May 24, 2020

by thegmpc


다르게 산다는 것

말씀(VERSE): 마가 12:13-17


주어진 하루 24시간, 누구나 먹고 마시고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 자세 히 들여다보지 않았으니 다 안다고 할 수 없지만, 보이는 것은 별반 다르지 않 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일상을 이야기하다 보면 서로 참 많이 다르다 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다르게 산다는 것, 그게 뭘까요? 모두가 두 다리로 걸어 다니는데 나 홀로 물구나무서서 사는 것일까?

많은 사 람이 사는 도시나 마을을 떠나 거친 들이나 산속에서 홀로 사는 것일까? 아니면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처럼 모두가 흐르는 강물을 따라 흘러가는 데 혼자서 거꾸로 가는 것일까? 이렇게 사는 것도 다르게 사는 것이라고 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위와 같은 것은 신앙안에서 다르게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럼 무엇이 다르게 사는 것일까요?

브라이언 왈쉬, 세상을 뒤집은 골로새서 다시 읽기에서 다르게 사는 것을 말하 고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남자와 여자가, 자유인과 노예 가 함께 예배 하며 한 식탁에서 음식을 먹었다. 사회적 지위에 관계없이 서로를 돌보며 자신 들이 가진 것을 나누었다. 그들은 해를 끼친 사람들에게 더 이상 복수하지 않고 용서를 베풀었다. 이것은 예수의 공동체 안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이 로마제국 의 생활과는 전적으로 다른 모습이었다.] 이것이 믿음을 가진 자들이 다르게 살았던 삶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속에도 다르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 다. “만일 누가 네 오른쪽 뺨을 때리거든 다른 뺨도 돌려 대라., 만일 누가 너 희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고 하거든 겉옷까지 내어 주어라., 만일 누 가 너를 강제로 약 1.5킬로미터를 가게 하거든 그와 함께 약 3킬로미터를 가 주어라., 네게 달라고 하는 사람에게 주어라. 네게 꾸러 온 사람을 거절하지 마라.” 원수까지도 사랑하여라,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여라”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을 수 있겠느냐? 심지 어 세리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다르게 산다는 것, 그것은 위와 같이 사는 것입니다. 즉 생활 속에서 내가 먼저 그리고 모두를 조금 더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며 조금씩 닮 아가는 생활을 한다면 분명 다르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May 17, 2020

by thegmpc


지금 만족하십니까?

말씀(VERSE): 마가 12:1-3, 5-11


미국의 한 유명한 신문에 기사 하나가 실렸습니다. ‘만일 자신이 가진 것에 참으로 만족하는 사람이 있다면 10만 달러를 주겠 다.’ 이 기사를 읽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고 합니다.

그들은 서로 자신이 현재의 삶에 만족하는 사람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10만 달러의 돈을 받지 못했습니다. 광고를 낸 사람이 던진 질문에 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질문은 “당신이 지금의 환경에 만족한다면 왜, 10만 달러의 돈이 필요합니까?”였습니다. 우리들도 이들 중의 한 사람은 아닐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이란 채움이 아니라 비움이란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 산 너머에 기쁨과 행복이 있지 않나 두리번거리 며 찾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기쁨이나 행복은 현재 나의 삶 속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이란 사람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 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1-13)

참된 자족(만족)을 원하십니까?

지금 나의 삶은 주님 안에서 살고 있으며, 내가 하는 일은 주님을 위한 일이라 는 확신이 있어야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 자기 일에 대해 확신을 가져야 합니 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내 모든 일은 하나님 뜻을 따라 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지금의 삶을 주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라고 생각하고, 감사의 조건을 찾을 수 있다면 분명 마음도 삶도 달라 질것입니다.

전도서 5:10절은“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 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그렇습니다. 우리 의 마음은 이 땅의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께서 주시는 자족하 는 마음이 내 안에 넘칠 때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마음에 만족이 넘치는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May 10, 2020

by thegmpc


가족은 관심입니다

말씀(VERSE): 시편 128:1-6


함께 생활하던 자녀 중에 잠시 집을 떠나 있게 되면 부모의 마음은 늘 자녀를 향하게 되어있습니다.

마음이나 생각이 머물러 있게 되면 자주 전화를 하게 되고 안부를 묻게 됩니다. 다른 일을 하다 가도 갑자기 생각이 나면 기도보다 전화기 버튼에 손이 먼저 가게 됩니다.

연 전에 아내의 마음이 한국에 가 있던 때가 있었습니다, 한번도 곁을 떠나지 않았던 딸아이가 한국에 갔기 때문입니 다. 이것이 가족. 자녀에 대한 부모의 마음입니다.

가정 그리고 가족이란 뭘까?

가족이란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또 마음을 쓰거나 알고 싶어하는 것이라 고 생각합니다. 즉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돌아보는‘관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회의 모습을 보면 관심이나 돌아보는 마음보다는 나와 상관 없는 것 같은 무관심이 너무 퍼져 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서로에게 아픔과 상처를 만들고, 그 상처는 다시 더 큰 고통을 가져다주는 일이 많습니다.

어느 아이의 이런 말은 가족의 모습을 돌아보게 합니다.

“가족이 서로 말 안하고 살아요. 할 말도 없고… 오랫동안 말 안하고 살다 보 니까 특별히 할 말도 없고요. 밥 먹을 때만 잠시 나왔다가 각자 방으로 들어가 버려요. 엄마 아빠도 서로 대화하는 걸 본 적이 없어요. 저도 아빠랑 말해 본 적 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항상 외롭다는 느낌이 들어요. 서로 대화도 없고 서로 뭘 생각하는지도 모르니까 가족이라고 해도 가족 같은 느낌이 없어요. 우리 가 족은 모두 다 외로울 것 같아요. 저만 외로운 것이 아니고 모두 다…”

가족이 소통이 없고, 무관심이 커지면 가족 모두에게 외로움이 찾아오고 나아 가 가족이지만 한 지붕 아래서 남남처럼 사는 것이 되고 맙니다.

5월, 다시 가정과 가족을 생각하는 가정의 달을 맞아 서로를 돌아보고 관심 을 갖고 가족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어 새로운 기쁨과 회복이 일어나는 계절 이 되기를 소원해 봅니다.


May 3, 2020

by thegmpc


좋은 열매

말씀(VERSE): 마가 11:12-14. 20-24


요즈음은 코로나19로 인해 식품점에 가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필요 한 물건이 있으면 식품점에 가게 됩니다.

가서 이것 저것 물건을 사다 보면 과일 코너를 지나게 되는데, 대부분 과일 코너는 보기에 좋게 잘 정리해 놓습니 다. 사과를 비롯해서 오렌지. 수박. 바나나. 포도 등등… 좋아하는 과일이 있으 면 사서 가지고 오게 되는데 맛이 있는 과일을 먹는 것은 참 좋습니다.

좋은 열매를 보면 그 열매의 나무 또한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지 예수님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꽃을 피우라 하지 않으시고 열매를 맺으라고 하셨습니다.

나무 뿐만 아니라 사람도 열매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 다. 그래서 예수님은 열매로 그들을 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 7:16-18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 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결국, 열매 즉 각자의 생활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좋은 옷으로 몸을 가리고 밤을 세워가며 곱고 아름다운 대사를 외워 말을 한다 고 해도 생활 속에서 맺어지는 열매가 거짓되고 더럽고 냄새 나는 것이라면 나쁜 나무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외식' 이라는 말로 표현하셨습 니다.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겉으로만 경건한 척 했습니다. 회당과 거리에서 나팔을 불며 구제했고,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했고, 주간에 두 번씩 금식을 하며 얼굴을 흉하게 하고, 슬픈 기색을 띄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외식하는 자들’이라 하 며 책망하셨습니다.

영국의 존 웨슬리(John Wesley)는 “참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언제 어디 서나 성실하고 정직하게 행동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소망합니다, 우리도 매일의 생활 속에서 좋은 나무가 되어 모두가 좋아하는 열매를 맺으면서 살기를…


April 26, 2020

by thegmpc


갈팡질팡하는 사람들

말씀(VERSE): 마가 10:46-52


기사에 보면 ‘미국 조지아주(州)가 시기상조 논란에도 불구, 4월24일 조기 경제 정상화를 강행한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연방정부 가이드라인 이외의 영업 재개에 대해 승인한 바 없다고 주장했다고 하면서 서로 책임을 상 대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갈팡질팡하는 이런 모습은 그 시작이 두려움 때문이라 생각이 됩니다.

두려움은 우리가 정상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도록 이성을 마비시킵니다. 평 상시라면 잘 하지 않을 실수를 하거나 비윤리적인 행동을 저지르게 만듭니다.

인생길을 가다 보면 적잖게 두려운 일들을 겪게 됩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결과에 대한 두려움, 보장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 건강과 질병에 대한 두려움, 인간관계 단절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등등… 그런데 이런 두려움은 모두 우리의 육신의 문제와 관계돼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열심히 애쓰고 힘쓰면 어느 정도는 극복하고 대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처럼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문제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의 노력으로는 극복할 수 없습니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다른 방안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영적인 문제, 즉 믿음의 문제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합니다.

삼상 16:14 절에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 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신이 떠나게 될때 우 리의 삶이 멈추게 되고, 그 마음은 두려움으로 가득 채워지게 됩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두려워 말라’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통계를 보면 365번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많이‘두려워 말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두려 움의 뿌리가 죄이고 죄는 우리에게 두려움을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세상적인 방법이 아니라 주님 안에 거할 때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매일의 생활 속에서 건강이나 관계, 세상 것에 시선을 두면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가치에 소망을 두고 나를 그 무엇 보다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의지한다면 지금 우리를 힘들게 하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누구가를 위해 섬기며 사랑할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 세상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 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April 19, 2020

by thegmpc


여유로운 마음이 행복의 지름길입니다.

말씀(VERSE): 시편 90:10-17


"3여(三餘)"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평생을 살면서 하루는 저녁이 여유로워야 하고, 일년은 겨울이 여유로워야 하며, 일생은 노년이 여유로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습니다. 너 나 없이 빨리 끝나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바라는 마음과 달리 들려오는 소식은 거리두기를 조금 더 연장해야 한다는 소식입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에게 실망과 조급함이 더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속에서는 조급한 마음 보다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말이 있고, “넘어진 김에 쉬어가라”는 말도 있습니다. 물론 상황이 상황인지라 쉬어도 쉴 수 없고 즐길 마음의 여유도 없겠지만, 그럴수록 여유를 갖도록 해야 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로 온 것은 하나님께서 잘못 인도해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도적인 인도 하심 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우리 안에 여유가 사라지고 조급함이 찾아오면 그 일이 무엇이든 실패할 가능성이 크고 웃음과 기쁨은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불평과 분노만이 남을 것입니다. 그러니 주어진 환경속에서 여유와 소망을 갖고 나아가야 합니다.

거북이가 장수하는 이유에 대해 읽어 본적이 있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 하나는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유를 가지고 산다는 것,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할 뿐 아니라, 이웃에 대해 배려의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에 감사가 채워질 것입니다.

삶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라 장거리인 마라톤과 같다는 것을 생각하고 좀더 여유를 갖고 사시면 좋겠습니다.

각자 행복의 기준은 달라도 여유로운 마음이 행복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April 12, 2020

by thegmpc


부활을 믿습니까?

말씀(VERSE): 벧후1:3-9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들 중 많은 이들이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을 믿는다고 합니다. 또 부활절을 국가 차원에서 명절로 정해 기념 하고, 국민의 대다수가 부활의 기적을 믿는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 게 합니다. 과연 우리는 부활의 기적을 얼마나 믿고 있는가? 또 그 믿음 안에서 능력 있는 생활을 하고 있는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부활의 기적을 확신하지 못하는 경우를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에 대한 확신이 없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성서신학자 윌리엄 바클레이(William Barclay)가 “부활이 없이는 교회의 존재 의미가 없다”라고 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부활에 대한 소망과 구원의 확신입니다. 부활의 확신이 우리에게 있다고 하면 우리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마음을 굳게 하여 흔들림이 없이 우리의 믿음을 든든히 세워 나갈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믿노라’하면서도 작은 일에 낙심하고, 믿음에 든든히 서지 못하는 것은 부활의 소망과 구원의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 주를 따르던 제자들도 주님의 부활을 경험하기 전에는 예수님의 예언에도 불구 하고, 그들의 믿음은 두려워 골방에 숨는 하찮은 것이었습니다. 수제자 베드로 는 스승인 예수님을 부인했고, 도마는 근심과 염려 우울한 모습으로 방황했으 며,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는 낙심과 절망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의 삶이 달라질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한가지였습니다. 그것은 부활의 주님 을 만났으며 눈으로 보고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제자들의 삶을 180도 바꿨습니다. 두려워 숨었던 저들이 세상 이 감당할 수 없는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들에게나 우리에게나 기쁨과 소망 그 자체입니다. 부활을 믿고 살아갈 때, 누구든지 죄와 죽음, 절망을 넘어 소망을 갖고 담대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신앙 뿐입니다.

[예수 부활하셨습니다. 할렐루야!]


April 5, 2020

by thegmpc


하루, 그 일상 속에서

말씀(VERSE): 눅19:35-38; 요19:30


요즈음 캐나다 사람 70% 가까이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하나 고민을 한다고 합니다. 이유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누구나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과의 만남이나 일터에서 일 할 수 있는 것이 어렵고, 좁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쉼을 갖기도 하지만 하루라는 시간이 너무 늦게 가므로 힘들어하는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루라는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한 시기입니다.

일상, 오늘이라는 이 하루가 왜, 중요할까? 우리네 삶이란 하루하루가 모아져 서 평생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톨스토이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 이순간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당신과 함께 있는 사람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당신 곁에 있 는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은 하는 것이다. 이 세가지가 우리가 세상에 있는 존재 이유이고 그래서 지금이 당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라고 하였습 니다. 모두가 어렵고 힘들어 하는 지금, 우리들이 가까이에 있는 이들을 새롭게 둘러 보며 따듯한 마음과 관심을 통해 행복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시 에 오늘이라는 이 하루 최선을 다해 내일을 준비하며 생활해야 할 것입니다. 누 구나 알고 있듯, 하나님의 시간은 쉬지 않고 지나 갈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순 간 우리들이 생각하는 어려움도 지나 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래와 연결해주 는 오늘을 징검다리삼아 좀더 나은 내일을 맞이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이라는 이 하루는 어제 죽은 사람이 그렇게 바라고 원하던 내일이고, 내가 살아갈 날 중에 값진 첫날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 코로나 19바이러스로 힘들어하는 이 날도 우리에게 값지게 사용하라고 주신 날입니다. 그러므로 매 순간 행복을 만들어 가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들의 삶을 원하시지 않을까요? 오늘, 무엇을 하며 누구를 위해 수고하며 하루를 보내야 하는지, 무엇이 더불어 기뻐할 수 있는지 자기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네 삶은 주사위 를 던져 정하는 운명 같은 삶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선택과 결단으로 이루어 진다는 것임을…

주변 상황이 힘들고 어렵지만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서 비관적인 생각보다 긍 정적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최선을 다해 즐겁게 하루하루를 보내면 좋겠습니다.


March 29, 2020

by thegmpc


두려움 보다 긍정과 배려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말씀(VERSE): 막 10:32-34


우리들은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 어디나 할 것 없이 아주 느리게 진행하거나 고요합니다. 그럼에도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더욱 속도를 내는 것 같아 염려가 됩니다. 정부는 어려운 이들을 돕고자 여러가지 대책을 내고 있습니다. 이런 때 좀더 관심을 갖고 서로를 돌아보며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이야 시대의 흐 름이 빨라져서 1-2년 만에도 없던 건물이 생기고 논이 변해 도시가 생기기도 하고, 바다가 육지가 되기도 합니다. 무심하게 다니다 보면 정말 새로운 건물, 빌딩 마을들이 생겨 새로운 곳에 온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멀리 계시는 분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가까이에 계시는 분들이면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은 연락도 하고 돌아보아야 하는데…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해 사람간 거리두기로 인해 더욱 멀어지고 무심해 할까 봐 염려가 있습니다.

무심하다는 것이 뭘까?

내 일 바쁘다고, 내 생각 복잡하다고, 내 가진 것 조금 손해 난다고 주변을 돌 아보지 않는 다면 우리는 무심한 사람이 되고 마는 것 같습니다. 늘 다니는 길 이어도, 늘 만나는 사람 이어도, 늘… 나 만을 생각하고 지낸다면 무심한 사람 인 것입니다.

종종 우리들은 내일 하면 되잖아, 아직 많이 남아있잖아 하며 그냥 쉽게 지나 치는 것, 그것이 무심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무심하게 보낼 때, 이웃이든, 가족이든, 친구든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무심한 사람’ 보다는 배려하는 마음으로 관심을 갖고 사는 것이 성도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빌2:4)